팽창의 속도가 왜 빨라질까
가속, 팽창, 거리, 밝기라는 네 단어를 먼저 세워 둡니다. 우주는 단순히 커지는 것만이 아니라, 커지는 속도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력이 서로를 끌어당기니 팽창이 서서히 느려질 것이라고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측은 뜻밖의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먼 우주에서 온 폭발 별, 곧 표준 촛불로 쓰이는 밝기 일정한 초신성을 여러 거리에서 비교해 보니, 예상보다 더 어둡게 보였습니다. 어둡게 보인다는 뜻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멀리 있다는 뜻이고, 더 멀리 있다는 뜻은 그동안 팽창이 우리가 짐작한 속도보다 더 빨랐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 놀라운 결과는 ‘우주의 팽창이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속이라는 말은 찻잔 안의 물결이 점점 빨리 퍼지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멀리 있는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더 빨리 멀어지는 경향은 예전에도 알았지만, 지금 말하는 가속은 그 멀어지는 속도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깔려 있으면서 중력과 반대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는 어떤 성분이 있다고 가정하면 설명이 쉬워집니다. 우리는 그 성분을 ‘암흑에너지’라고 부릅니다. 암흑이라는 말은 모른다는 뜻일 뿐, 무섭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아직 성질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에너지를 임시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암흑에너지는 공간의 빈틈마다 고르게 스며 있는 배경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이 우주의 팽창을 살짝 밀어 주는 손놀림을 더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질은 서로 모여 덩어리가 되고, 빈 공간은 더 넓어집니다. 그럴수록 암흑에너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팽창은 점점 더 빨라집니다. 이 기본 그림을 이해하면 가속 팽창이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가속 팽창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우주를 대표하는 표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속도의 변화를 추정한다는 것입니다. 달력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듯, 서로 다른 거리의 초신성 자료가 시간의 페이지 역할을 합니다. 또한 같은 밝기를 내는 표준 촛불을 고르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혼동을 줄이기 위해 밝기가 일정한 종류만 골라 쓰고, 먼지와 가스가 빛을 얼마나 가렸는지 보정합니다. 이런 꼼꼼한 정리가 있어야 ‘예상보다 어둡다’는 결론이 단단해집니다. 거기에 암흑에너지 가설을 더하면, 여러 자료가 서로 모순 없이 맞물립니다.
암흑에너지를 어떻게 알아볼까
초신성, 요동, 렌즈, 우주배경이라는 네 단어로 단서를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초신성입니다. 밝기가 일정한 종류의 폭발 별을 여러 거리에서 관측해, 실제 밝기와 보이는 밝기를 비교하면 거리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거리표가 그리는 곡선이 ‘시간에 따른 팽창 속도’를 알려 줍니다. 그 곡선이 보여 준 메시지가 바로 가속 팽창이었습니다. 둘째, 요동입니다. 우주의 초기에는 가스와 빛이 서로 밀고 당기며 잔물결 같은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이 잔물결의 특정한 길이는 오늘날 은하들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모여 있는지에 작은 표지판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이 표지판을 여러 거리에서 찾아 우주의 자로 씁니다. 자 길이가 일정하다면, 그 자가 어느 거리에서 어느 크기로 보이는지를 통해 팽창의 이력을 되짚을 수 있습니다. 셋째, 렌즈입니다. 거대한 집단이 만드는 중력렌즈의 세기 분포를 넓은 하늘에서 측정하면, 시간이 흐르며 구조가 얼마나 빠르게 자라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속하는 우주에서는 물질이 모이는 속도가 특정한 방식으로 변합니다. 관측된 렌즈의 지도가 이 변화를 지지하면, 암흑에너지의 존재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넷째, 우주배경입니다. 젊은 우주에서 풀려난 배경빛의 미세한 울퉁불퉁함은 이후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우리가 오늘 측정한 배경빛의 무늬와 수많은 은하 지도를 함께 맞추면, 우주 전체 성분의 비율을 거칠게나마 그릴 수 있습니다. 그 그림 속에서 암흑에너지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네 가지 단서는 서로 엇갈리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일 때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각 자료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합쳐 읽습니다. 초신성은 시간의 자, 요동은 공간의 자, 렌즈는 성장의 자, 배경은 출발선의 자입니다. 여러 자가 같은 길이를 가리키면, 우리는 한층 자신 있게 결론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표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은하단의 개수와 덩치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세어 보는 방법입니다. 가속하는 우주에서는 아주 먼 과거에 큰 덩어리가 빠르게 자라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같은 깊이의 하늘에서 거대한 집단이 얼마나 보이는지 비교하면, 팽창의 역사와 성장의 역사가 함께 드러납니다. 또한 이 과정을 거치면 거리의 자와 성장의 자가 서로를 검증해 줍니다.
숫자보다 태도: 모르는 것을 다루는 법
모형, 오차, 검증, 겸손이라는 네 단어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암흑에너지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빈 공간 자체가 가진 에너지(우주상수)라고 보고, 또 어떤 이는 시간에 따라 진폭이 조금씩 달라지는 장의 형태라고 추측합니다. 다른 설명으로는 중력 법칙이 아주 큰 규모에서 살짝 다르게 작동한다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모형을 고집하는 일이 아니라, 관측과 계산으로 가능한 후보들의 틀을 줄여 나가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차의 성격을 정확히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아주 희미한 신호를 다루다 보면, 기기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얇은 구름, 데이터 처리 과정의 작은 가정이 결과를 크게 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늘을 다른 방법으로 되풀이 관측하고, 서로 다른 팀이 자료를 독립적으로 분석해 비교합니다.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문화가 쌓일수록, 암흑에너지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태도는 겸손입니다. 가속 팽창이라는 큰 결론도 한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관측이 지금의 생각을 일부 바꿀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틀릴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료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를 용기를 가진다면, 모르는 것을 다루는 우리의 능력은 더 커집니다. 밤하늘을 오래 바라보며 작은 변화를 기록하듯,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근거를 하나씩 쌓아 올립니다. 그렇게 하면 암흑에너지라는 말도 신비로운 장애물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정한 문턱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질문을 생활의 규모로 줄여 연습할 수 있습니다.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을수록 기준을 더 분명히 세우고, 측정값을 그대로 믿기보다 반복 확인을 습관으로 만듭니다. 작은 망원경으로 같은 별을 여러 밤에 나누어 관측해 밝기 변화를 기록하는 일은, 거대한 우주 논의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느림과 검증, 공개와 협업이라는 태도는 규모만 다를 뿐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우주론 해설, 국립중앙과학관 천문 자료, 유럽우주국(ESA)·미국항공우주국(NASA) 교육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