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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평가의 뼈대(DCF·상대가치·멀티플 운용)

by 신기자 2025. 9. 27.

기업 가치평가의 뼈대(DCF·상대가치·멀티플 운용)

 

가치평가는 “얼마에 사서 얼마의 위험을 안고 얼마를 벌 것인가”를 수식과 절차로 고정하는 작업이다. 이 글은 절대가치(DCF·배당·잔여이익)와 상대가치(멀티플·요인 비교)의 원리를 한 판에 올려 장단점을 분해하고, 성장·마진·재투자·위험을 한 문장으로 엮는 연결식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현금흐름 표준화, 할인율·말단가정 점검, 동종집단 구성, 리스크 조정 멀티플의 실전 규칙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해 “싸 보이는 것”과 “실제로 싼 것”을 구별하는 감각을 훈련한다. 목표는 예측의 오만을 줄이고, 입력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밸류에이션 프레임을 손에 쥐는 것이다.

절대가치: DCF·배당·잔여이익, 현금흐름의 언어로 번역하는 가치

절대가치 접근의 핵심은 “기업이 앞으로 창출할 잉여현금흐름을 오늘의 돈으로 바꿔 합산한다”는 간명한 문장이다. 자유현금흐름(FCF)은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유지·성장 투자(CAPEX)와 운전자본 증가를 차감해 얻고, 이를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으로 할인해 기업가치(EV)를 구한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수익성×성장×재투자’의 연결식이다. 매출 성장률이 같아도 영업이익률과 현금전환율, 재투자율이 다르면 FCF의 궤적은 전혀 달라진다. 성장의 질은 ROIC와 재투자율로 측정된다. ROIC>WACC라면 성장할수록 가치가 늘고, ROIC<WACC라면 성장할수록 가치가 줄어든다. 따라서 DCF는 성장률을 ‘목표’가 아니라 ROIC·마진·운전자본 회전으로부터 ‘결과’로 역산해야 흔들림이 줄어든다. 할인율은 무위험금리+베타×주식위험프리미엄+크레딧 스프레드 등으로 조립되는데, 숫자 자체보다 ‘민감도’가 더 중요하다. 무위험금리 ±100bp, ERP ±100bp 변화에 가치가 얼마나 출렁이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는 시나리오·확률 가중을 적용해 단일 점추정의 취약성을 줄인다. 말단가정(터미널)은 잦은 함정이다. 영구성장모형(g)에서 g는 경제의 장기 실질 성장률+물가보다 낮게, 또는 말단 ROIC가 WACC에 수렴한다는 전제와 함께 일관되게 잡아야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초과이익은 소멸한다는 경제학적 직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배당할인모형은 잉여현금이 곧 배당으로 흐르는 안정적 사업에 유효하지만, 재투자가치가 큰 성장기업에는 잔여이익모형(RIM)이 더 적합하다. RIM은 장부가에 초과수익(ROE−요구수익률) 현재가치를 더하는 방식으로, 회계기반이지만 경제적 의미가 선명하다. 세 접근은 모양이 달라도 본질은 같다. “초과수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그것을 유지하려면 얼마를 다시 투자해야 하는가”라는 두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계의 그림자를 덧댄다. 감가상각·무형자산 상각·리스·주식보상·충당금·환산차손익은 손익과 현금 사이의 간극을 만든다. 따라서 EBITDA·영업현금흐름·FCF를 함께 표준화하고, 유지 CAPEX와 성장 CAPEX를 분리해 ‘진짜 잉여’를 추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대가치는 ‘느리지만 정교한’ 도구다. 입력의 일관성, 시나리오의 분산, 말단의 겸손이 없으면, 정밀해 보이는 숫자가 정작 현실에 약해진다. 좋은 DCF는 숫자의 미세공예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인과를 설명하는 짧은 문장과 그 문장을 수치로 옮긴 표다.

상대가치: 멀티플·피어 비교의 위력과 함정, ‘질 조정’의 규칙

상대가치는 “비슷한 사업은 비슷한 가격”이라는 실용적 전제 위에 선다. PER·EV/EBITDA·EV/Sales·P/B·P/FCF 같은 멀티플은 빠른 비교가 가능하고, 자금이 움직이는 현장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멀티플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높은 멀티플은 대개 (1) 성장률이 높거나 (2) ROIC가 높고 초과이익 지속기간(Moat)이 길거나 (3) 변동성이 낮고 현금흐름의 가시성이 높거나 (4) 규제·소송·지배구조 리스크가 낮거나 (5) 자본집약도가 낮아 잉여 현금창출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는 반드시 ‘질 조정’을 동반해야 한다. 첫째, 성장·수익성·재투자. 같은 EV/EBITDA 10배라도 A는 성장률 5%/CAPEX heavy, B는 성장률 10%/CAPEX light라면 B가 싸다. EV/Sales는 마진을 무시하므로, 총이익률·영업이익률로 보정하거나 Rule of 40(소프트웨어 등)에 준한 복합 지표로 필터링한다. 둘째, 회계 정책과 사이클. IFRS/US GAAP 차이, 주식보상 처리, 리스, 예약매출·충당금 추정의 공격성은 멀티플의 분모를 왜곡한다. 전고점 대비 이익이 사이클 피크인지 트로프인지도 분리해야 한다. 경기 민감 업종은 ‘정상 이익’ 대비 멀티플을 보는 것이 낫다. 셋째, 자본구조. PER은 레버리지의 영향을 받아 착시가 잦다. EV 계열 멀티플로 전환해 부채·현금을 중립화하고, 이자비용의 정상화(일시적 저금리 혜택/헤지 만료)를 가정에 반영한다. 넷째, 규제·지배구조·소유 구조. 정부 규제 강도, 가격통제 가능성, 대주주 거래, 의결권 구조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바꿔 동일 멀티플 비교를 무력화한다. 다섯째, 지역·통화. 동일 업종이라도 임금·임대·세금·환율이 다르면 동일 멀티플이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환헤지 비용이 큰 통화는 할인율이 사실상 높다. 여섯째, 유동성과 지분 스토리. 대형·고유동 종목엔 유동성 프리미엄이 붙고, 지수 편입·테마 모멘텀·상장물량·자사주 정책은 ‘스윙 멀티플’을 만든다. 상대가치는 속도가 강점이지만, “싸보임”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PER이 낮은 이유가 재무 레버리지·소송·제품 사이클의 축소 때문일 수 있다. 반대로 EV/Sales가 높은데도 총이익률·순유지율(Net Dollar Retention)·고객생애가치/획득비용(LTV/CAC)이 탁월한 구독형 모델은 여전히 저평가일 수 있다. 실무에서는 ‘질 조정 멀티플’을 쓴다. 예컨대 EV/EBITDA를 (1−성장률×재투자율/ROIC)로 나눠 미래 잉여의 질을 반영하거나, PER을 (g+배당수익률)로 나눠 PEG를 보되, g를 단기 컨센서스 대신 3~5년 ROIC·재투자 기반의 구조 성장으로 대체한다. 마지막으로 피어 선택이 절반이다. 사업모델·고객·채널·가격결정력·규제 환경이 같은 집단만 남기고, 엉뚱한 비교 대상을 버리면, 멀티플은 비로소 ‘지도’가 된다.

실전 운용: 입력의 표준화, 말단·시나리오·리스크 프리미엄, 매수·매도 규칙

실전에서 밸류에이션의 품질을 가르는 것은 수식보다 ‘운용 절차’다. 첫째, 입력의 표준화. (1) 매출을 수량×가격×믹스로 분해하고, 동인별 가정을 명시한다. (2) 총이익률은 원재료·환율·믹스·학습효과로 분해해 민감도를 붙인다. (3) 판관비는 매출 대비 탄력(운영 레버리지)으로 모델링하고, (4) 운전자본은 매출채권·재고·매입채무 회전일수로 전환해 성장에 따른 현금 소요를 반영한다. (5) CAPEX는 유지·성장으로 나누고, 유지 CAPEX≈감가상각을 기본, 성장 CAPEX는 생산능력·고객확보 계획에 연동한다. 둘째, 할인율·말단·시나리오. WACC는 (a) 무위험금리의 레짐(저금리/정상/고금리) (b) ERP의 분위수 위치 (c) 자본구조 목표(순차입/EBITDA) (d) 세전·세후 일관성으로 산출하고, 민감도 표를 기본 화면에 고정한다. 터미널은 두 버전—영구성장(g)과 말단 멀티플—을 병렬로 계산해 결과가 특정 가정에 과도 의존하지 않는지 점검한다. 시나리오는 기본·낙관·비관 3가지에 동일한 기간 구조를 적용하되, 비관 시나리오는 ‘영업이익률-200bp, 성장률-⅓, 환율·원자재 불리’처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조합으로 짠다. 셋째, 리스크 프리미엄과 체크리스트. 규제·소송·기술 대체·집중고객(또는 공급자)·사고·지배구조 같은 비금융 리스크는 별도의 프리미엄(혹은 멀티플 할인)으로 일관되게 반영한다. 네 번째, 비교와 크로스체크. DCF, RIM, 멀티플, 거래사례(유사 M&A/상장) 네 축을 교차 비교해 ‘합리적 구간’을 찾고, 현금흐름 수율(FCF/EV), 총주주수익률(TSR=배당+자사주+재평가)을 옆에 붙여 ‘현금의 언어’로 재확인한다. 다섯째, 매수·매도 규칙의 문서화. “가치 대비 가격”의 갭이 목표(예: 25~30%)를 넘으면 분할 매수, 가치 훼손 트리거(ROIC<WACC 지속, 총이익률 구조 붕괴, 규제·소송 리스크 실현, 재무 레버리지 악화)가 발생하면 비중 축소, 가격이 가치 상단(또는 리스크 프리미엄 축소로 인한 멀티플 과열)을 크게 넘으면 차익 실현. 여섯째, 기록과 복기. 분기별로 ‘가정→현실’ 테이블을 업데이트하고, 오차의 방향성(체계적 낙관/비관)을 교정한다. 일곱째, 포트폴리오 연결. 단일 종목 가치가 아무리 좋아도, 섹터·국가·팩터의 편중이 크면 포트폴리오 리스크는 과대해진다. 따라서 밸류에이션 결과는 자산배분·리스크 예산과 함께 읽힌다. 마지막으로 겸손의 기술. 좋은 기업이 좋은 투자와 동일하지 않으며, 싼 기업이 안전하지도 않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의 일관성과 절차의 충실성, 리스크의 한도와 기록뿐이다. 이 세 가지가 지켜질 때, 밸류에이션은 주가 맞히기가 아니라 자본 배분의 기술로 자리 잡는다. 숫자는 변하지만, 절차는 우리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