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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과 생산성, AI·자동화의 경제학

by 신기자 2025. 9. 27.

 

기술혁신은 성장의 속도와 분배의 지형을 동시에 바꾼다. 특히 AI·자동화는 ‘노동×자본’의 고정된 틀을 ‘과업×데이터×알고리즘’의 동학으로 치환하며, 총요소생산성의 질을 재구성한다. 이 글은 첫째, 생산성의 언어로 혁신을 번역하고 AI가 노동을 대체·보완하는 경로를 정리한다. 둘째, 기업·산업·도시 수준의 전파 과정과 불균등의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셋째, 가계·기업·정책이 학습·데이터·거버넌스의 규칙으로 혁신을 실적과 생활의 잉여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목표는 유행어를 넘어서, 투자·채용·교육·규제의 선택이 장기 성장과 분배에 남기는 숫자를 설계로 고정하는 것이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AI·자동화의 경제학
기술혁신과 생산성, AI·자동화의 경제학

 

1. 총요소생산성과 무형자본, AI의 보완·대체 경로

생산성은 투입 증가 없이 산출을 늘리는 능력이며, 총요소생산성(TFP)은 측정되지 않은 지식·조직·제도·데이터·알고리즘의 종합 지표다. AI·자동화의 파급을 읽으려면 ‘노동/자본’이 아니라 ‘과업(task)·지식·도구’의 분해가 필요하다. 동일한 직무라도 과업들은 반복성·규칙성·맥락의존성·물리적 상호작용 정도가 다르다. 반복·규칙 중심 과업은 자동화의 탄성이 높고, 맥락 판단·대면 신뢰·통합적 문제정의 과업은 보완의 여지가 크다. 이때 생산성의 경로는 세 갈래다. 첫째, 대체 경로. 알고리즘이 인간의 과업을 직접 수행하며, 단위 시간당 산출이 증가한다. 비용은 하락하지만 고용의 구성이 바뀌고 숙련 프리미엄의 분포가 재배치된다. 둘째, 보완 경로. 도구가 인간의 의사결정·창의·협업 속도를 높이며, 같은 인력으로 더 큰 가치를 만든다. 재작업·대기·전달의 ‘보이지 않는 낭비’를 제거하는 표준화·자동화·템플릿화가 효과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셋째, 재설계 경로. 제품·서비스·공정 자체가 바뀌어 수요의 품질·폭이 확장된다. AI가 새로운 기능을 열어 가격탄력성과 지불의사가 변하면 매출 믹스가 달라지고, 생산성 개선이 마진뿐 아니라 성장으로 번역된다. 이 모든 경로를 가능케 하는 기반은 무형자본이다. 코드·데이터·브랜드·프로세스·문화·교육이 자산화되어야 학습곡선이 작동하고, 초기 고정비가 규모·범위의 경제로 회수된다. 무형자본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경영자는 EBITDA만 보지 말고 ‘표준작업서·데이터 파이프라인·피드백 루프·권한 부여’ 같은 보이지 않는 자산의 적립을 트래킹해야 한다. 또한 AI의 품질은 데이터의 청정도·대표성·권리에 좌우된다. 편향된 학습·불명확한 권리·거버넌스 부재는 규제·평판 리스크로 되돌아오며, 생산성의 이익을 상쇄한다. 마지막으로 측정의 문제. 전통 통계는 품질 개선·시간 절약·오류 감소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업 내부에선 ‘사이클타임·재작업률·품질 콜백·NPS·건별 원가’의 실시간 계기판으로 생산성을 재정의하고, 외부 보고에선 유닛 이코노믹스(건별 총이익/처리 시간)와 무형자본 투입을 병기해야 한다. 혁신은 구호가 아니라 표준·데이터·권한의 합이다. 이 합이 누적될 때 TFP는 숫자에서 현실이 된다.

 

2. 전파와 불균등: 기업·산업·도시에서의 갈라짐과 수렴의 조건

기술의 사회적 성과는 ‘발명’이 아니라 ‘전파’에서 결정된다. 같은 기술이라도 기업의 흡수역량(IT 스택·데이터 품질·현장 권한·리더십), 산업의 경쟁도, 도시의 인재·네트워크 밀도에 따라 생산성 분포의 상·하단이 벌어진다. 기업 수준에서는 핵심 공정에의 깊은 통합과 주변 공정의 표준화가 결정적이다. 파일럿이 파일럿으로 끝나는 이유는 ‘현장 통합 실패’다. AI 모델의 ROC-AUC가 아니라, 현장의 SOP·권한·인센티브가 바뀌었는지가 전파의 분기점이다. 또한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기업은 학습→개선→시장점유율 증가→더 많은 데이터의 양의 피드백을 구축한다. 이는 상위 기업의 생산성·마진·임금 프리미엄을 강화해 임금·이익의 슈퍼스타 집중을 낳는다. 산업 수준에서는 표준·인터페이스·규제 정합성이 전파 속도를 좌우한다. 이질적인 포맷·폐쇄형 API·규제의 불확실성은 소규모 기업의 도입을 지연시켜 격차를 확대한다. 반대로 산업 표준(데이터 스키마·보안 인증·모듈형 아키텍처)과 상호운용성은 규모의 불리함을 완화해 ‘긴 꼬리’ 기업의 생산성 개선을 촉진한다. 도시/지역 수준에서 혁신은 밀도와 맞물린다. 숙련 인재·대학·벤처·대기업·공공기관의 근접은 아이디어의 확산 속도를 키우고, 시도-학습-피벗의 주기를 단축한다. 그러나 주거 비용·교통·교육 격차가 임계치를 넘으면 인재의 유출이 가속되고, ‘두 개의 경제’가 형성된다. 전파의 정치경제도 중요하다. 기술의 이익이 특정 집단·지역에 집중되면 반작용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채용을 위축시켜 전파를 늦춘다. 수렴을 위해선 개방 표준·데이터 접근·이동성이 핵심이다. 데이터 신탁·공공 API·규제 샌드박스·이동·원격근무 인프라·평생학습의 금융이 결합될 때, 기술의 이익이 더 넓은 저변으로 흘러가 불균등의 정치적 마찰을 줄인다. 결론적으로 전파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시장·공간의 문제다. 이 셋이 정렬될 때만, 혁신은 성장과 포용을 동시에 낳는다.

 

3. 적용: 가계·기업·정책의 학습·데이터·거버넌스 설계

가계는 직무가 아니라 과업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 한다. 반복·규칙 과업의 비중을 연 1회 점검해 자동화에 취약한 영역을 줄이고, 문제정의·시스템 사고·대면 신뢰·스토리텔링 같은 보완 영역의 숙련을 계획적으로 올린다. 개인의 데이터 자산도 관리 대상이다. 작업 산출물을 재사용 가능한 템플릿과 코드 스니펫으로 축적하고, 공개 가능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외부 신뢰 신호를 강화한다. 기업은 AI를 ‘프로젝트’가 아니라 운영 체계로 들여와야 한다. 첫째, 데이터 거버넌스(권한·품질·계보·보안)를 선행 조건으로 삼고, 라벨링·실험·배포·모니터링의 MLOps 파이프라인을 제품·영업·고객 성공과 연결한다. 둘째, 현장 권한을 확대한다. 모델 출력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SOP·권한·책임이 함께 재설계돼야 한다. 셋째, 무형자본 회계를 도입한다. 표준작업서·데이터 파이프라인·교육 시간·오류율·사이클타임 개선을 KPI로 묶어 투자자·이사회와 공유한다. 넷째, 윤리·법무·보안의 삼중 장벽을 기본값으로 두고, 개인정보·저작권·편향·설명가능성의 기준을 ‘제품 정의’에 포함한다. 정책은 개방–보호–유연의 균형을 잡는다. 공공데이터의 품질·표준·API 제공을 확대하되, 개인정보·민감 데이터는 신뢰 기반 접근(가명처리·안전구역·감사로그)으로 관리한다. 규제는 기술 중립성을 지키면서 위험 기반 차등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샌드박스→규정화의 계단을 제도화한다. 교육·훈련은 모듈형·성과연동·금융지원을 결합해 생애 주기 학습을 실현한다. 도시 정책은 주거·교통·돌봄의 병목을 풀어 인재의 이동과 원격 협업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세·보조는 무형자본·데이터 인프라·현장 자동화에 대한 세후 기준으로 재설계해 투자 유인을 명확히 한다. 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다르게 하는 것’이며, 그 다름을 숫자와 규칙으로 고정할 때 비로소 생활과 손익의 잔여로 남는다.